시간은 요란한 이별이나 거창한 만남의 의식 없이도 어김없이 오고간다.

보신각 타종식에 단 한 번 가본 적 없어도, 해맞이를 하러 산꼭대기에 오르거나

동해로 달려가지 않고도,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왔다.

소용을 다해버린 달력을 치우고, 새 달력을 벽에 거노라니 언제쯤 이것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하는 아득한 기분이 든다.

물론 그 생경함은 잠시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함을 넘어 무덤덤해지고

무덤덤해지다 못해 지겨워질 것을 뻔히 알지만 말이다.

"흘러간 것은 물이 아니라 흘러간 물이다." 는 박용하의 시구를 흉내내어

"흘러간 것은 시간이 아니라 흘러간 시간이다." 라고 중얼거려 본다.

그처럼 시간은 언제나 새롭다. 유행가 가사처럼 우리는 그저 세월을 시간을 따라 흘러가는 것 뿐이다.

때로 변화 무쌍한 시대의 물결을 몸에 싣고 아슬아슬한 파도타기를 한다.

하지만 정녕 흐르는 것이 두렵지 않으려면, 물멀미를 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버리지 않으려면,

조용한 가운데 움직임을 읽는 정중동의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나를 잃지 않고 변화할 수 있다.

'나'라는 중심을 놓치지 않아야 "변해야 살아남는다"는 말이 더 이상 위협적인 압박이나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은 거대한 변화는 커녕 사소한 변동에도 들썩거리기 쉽다.

사람은 누구라도 근본적으로 어리석고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토록 맥없이 일희일비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독서가 필요하다.

책읽기는 단순히 정보 습득이나 처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자존감과 자신감을 높이는 데 무엇보다 탁월한 치유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살아갈수록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데 지식이나 정보보다 지혜가 더 소중하듯,

독서는 당장의 실용적인 이유를 뛰어넘어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이해를 얻는데 그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오늘 펼쳐드는 한 권의 책으로 언젠가 다섯 수레를 지혜로 가득 채우는 꿈을 꾸어보는건 어떨까 ??

<소설가 김별아의 사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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